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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두 측면: 제의와 알레고리

  • seungyonkimcomp1
  • 2018년 5월 22일
  • 1분 분량

(제의에 관한 부분은 Mircia Eliade의 글을 참조. 보조적으로 Joseph Campbell)


단언할 수는 없으나, 예술의 기원은 '제의'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전제를 놓고 본다면, 예술의 본령 또한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의는 신화, 혹은 그 기록물인 경전을 기반으로 하여 구성된다. 가장 핵심적인 제의는 세계창조와 관련된 제의, 혹은 다른 희생제의가 되는데, 이는 세계 창조와 회복이라는 '역사'의 반복이다.


따라서 형식 상으로 '신'—혹은 천사거나 신령한 영이거나—이 창작자가 되며, 사제나 주술사와 일부 혹은 전체 참여자가performer가, 그리고 나머지 참여자는 일종의 '감상자'가 된다.


내용적으로, 이것은 비유, 보다 세부적으로 알레고리이다. 세계에 분포된 수많은 '남매 혼인'의 신화는 실제 남매인 두사람의 결혼 같은 것이 아니며, 태양과 달의 창조 혹은 탄생은 물리적인 태양계의 태양과 지구의 위성 달의 생성기원이 아니다. 이것은 정확히 '의인화의 알레고리'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 이면의 상징적인 '의미'들을 추상능력을 통해 발견한다.


예술에서는 이러한 두 측면이 각각 형식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을 구성하며, 겹쳐져 하나의 차원을 이룬다.


감상자는 이에 감상이라는 형태로 '참여'하며, 알레고리화된 내용으로부터 추상을 통해 의미를 발견한다.


*물론 제의와 예술은 서로 다른 분야이나, 제의가 실질적인 '생산'활동과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단순히 생존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정신적 필요에 의한 정신활동이라는 점에서 예술과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KR © 2017 김승연(Seungyon Kim). 출처 표기 인용 가능 /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N © 2017 Seungyon Kim. Quote with attribution. No reproduction or redistrib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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