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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의 시간

  • seungyonkimcomp1
  • 2017년 12월 12일
  • 3분 분량

음악은 시간예술이며, 이에는 비단 작곡이라는 작품의 생산활동에서 발생하는 기술적인 시간통제에 국한되지 않고, 시간의 흐름을 작품과 공유하는 것으로만 작품의 감상이 이루어질 수 있음 또한 내포한다. 그러나 20/21C의 음악에서 과연 그러한 측면에 대한 고찰이 작품 안에 녹아있는가? 예술의 다른 영역인 미술(특히 회화)에 있어서, 어떤 질료가 위치하는 차원으로서의 의미로 음악에서의 시간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공간은, 20C 중반 추상예술에 대한 논의와 함께 깊게 다루어졌으며, 회화의 평면성에 대하여는 추상회화의 핵심적 개념으로까지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20C 중반에 시간성, 혹은 시간의 어떤 특성이 음악에 있어 핵심적인 것으로서 논의되었다거나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20C의 주류에 해당하던 음악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탈시간적 특성이 두드러졌다고 생각한다. 예로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씌여졌고 영향을 미쳤으며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전음렬을 포함한 음렬주의—그 자체가 이제는 거의쓰이지 않으나, 여전히 연구는 계속되고 있으며 또한 일종의 고전으로서 계속 반복적으로 참조되는—나 스펙트럴리즘과 같은 경우, 그것은 어떤 시간에 대한 통제나 자유를 넘어서 탈시간적인 시스템으로 화하거나, 반대로 시간흐름 가운데 어떤 순간들 속에 완전히 매몰되어 흐름은 더이상 중요치 않은 것이 된다.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순서는 시간에 관련된 것이 아닌가? 분명 순서는 시간과 연관된 측면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간 자체는 순서보다는 흐름에 가깝다. 우리가 현실에서 시간을 언급할 때, 편의상 1시, 2시, 3시, 혹은 30분, 1시간, 2시간 등과 같이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느정도 임의적인 계량이며, 정확히는 1시 '다음에' 2시가 '오는' 것이 아니라, 1시라는 임의적 순간에서 2시라는 임의적 순간을 향해 끊임없이 흐른다. 그리고 순서라는 것은, 이 흐르는 시간을 구획하여, 흐름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변화라는 것을 소리로부터 제거하는 것이 된다.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시간 안으로 함몰되는 주류적 경향 외에 어떤 시간의 흐름이 드러나는 음악양식의 조류로는 아마 미니멀리즘 중의 일부 음악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초기의 미니멀음악의 양상은 단순한 반복에 의해 시간이 탈색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후의 곡들에서는 시간 흐름을 따라 점진적인 변화를 보이는 양상이 나타나며, 우리는 거기에서 시간과 변화가 결부되어 형상화되어 있는 것을 감상할 수 있다. 이는 사실 조성음악에 있어 '전개'라는 양상(혹은 연결구 등에서의 이행이라는 양상)으로 드러나던 것이나, 그보다 더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미세한 변화에 집중되어있다. 그리고 이는 미니멀음악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어떤 유사한 전개방식을 보이는 부분이 나타나는 곡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들, 음악 안의 부분들이 음악의 시간성을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시간에 따라 단순히 음이 증가되거나 변화되는 거의 천편일률적인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아직 어떤 전개에 의한 발전 이상의 무언가를 들려주는 곡을 발견하지 못했다. 추상회화가 평면성과 평면 위에서의 다양한 입체성, 그리고 여러가지 다른 요소들과 요인들에 의한 공간에 대한 여러가지 시도를 통하여 평면공간에 대한 깊이를 가진 것에 비하면 이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음악에 있어서 시간성이라는 측면에서 조금 더 가까운 영역일 영화에 대해서 말하자면, 영화가 대략 한세기만에 이룬 시간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다루는 기술은 놀랍다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상업적인 헐리웃 영화가 극적인 구조를 위해 초단위까지 길이를 통제하기도 한다는 것을 들어보았다면, 그리고 시간에 따라 전개되는 사건과 그에 따른 인물의 심리 변화 등을 사실적으로/현실감있게 드러내기 위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롱테이크로 잡아내는가를 이해한다면, 미술과 사진으로부터 파생된 단순한 연속동작에서 출발한 영화의 발전은 경이적일 정도이다. 이 상반된 입장에서 파생된 두가지 경우는 분명 편집에 대한 관점으로부터 파생된 것이지만, 편집이나 공간의 영역을 넘어서 시간의 문제로 확장되었고, 현재는 시간적으로 또한 다루어지고 있다—어떤 시점에서 어디를 보고 어떻게 풀어내는가, 영화 내에서 보여지는 시간대들이 무엇으로서 보여지고 서로 어떻게 조응하고 충돌하는가, 혹은 시나리오나 내용의 전개가 드러나고 이루어지는 방식이 시간과 어떻게 관계되는가 등등.


무엇이 구상적인 영화를 추상적인 음악보다 시간에 대한 이해를 더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분명 시간을 계량하지만, 그것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으며, 다른 것들, 예를 들면 해의(지구의) 움직임을 통한 밝기의 변화 등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느끼지만 그 자체는 분명하지는 않은, 추상적인 무엇이다. 그럼에도 헐리웃 영화처럼 그 드라마와 서스펜스, 스릴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간적으로 극도로 계산된 영화도, 롱테이크나 핸드헬드 등으로 현장과 시간을 묶어 현장성을 주는 프랑스 예술적인 영화도, 자연의 풍광이나 들꽃, 우주 등을 촬영한 장면을 가속하여 보여주거나, 개인의 나이대별 모습을 연대기적으로 촬영하여 하나의 작품 안에서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평소에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거기에 시간을 무엇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시각과 철학이 녹아있으며, 여기에는 현대음악에서 다루어지는 시간 이상의 무엇이 보인다.


그리고 이 지점에 내가 품고 있는 현대음악에 대한 의문이 있다. 우리의 작품 안에서, 시간은 무엇인가? 그것은 음악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어떻게 드러나는가? 음악 안에서 시간이, 단지 소재들이 제시되고 관계되고 발전하는 장으로서의 역할 이외의 무언가로서 작용하고 있는가?




KR © 2017 김승연(Seungyon Kim). 출처 표기 인용 가능 /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N © 2017 Seungyon Kim. Quote with attribution. No reproduction or redistrib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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