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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YON KIM composer
작곡가 김승연


모더니즘의 의미적 차원의 깊이
모더니즘에서 예술작품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어떤 현상, 혹은 물질의 감각적 측면을 분리하여 그 자체를 하나의 독립적 차원으로 만들고, 다른 의미들을 제거한 채 거기에 새로 부여한 단 하나의 의미,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층위만을 남기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는, 모더니즘 초기의 미래주의 운동이 있다. 미래주의에서 운동, 움직임이라는 것은, 그것이 이해되는 의미—'발레'라거나 '기차의 운행'이라던가—가 제거되고, '운동'이라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남겨진 후, 여기에 '미래지향적'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그리고 주관적인 의미층위만을 부여한다. 여기서 '운동' 자체는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종교의 새로운 계약, 유토피아적 비전 구현의 약속을 보여주는 하나의 성물이 된다. 이전의 회화에서는, '동작'(혹은 자세. 움직임과는 다름)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공통적인
2018년 5월 6일


'나'라는 존재에 대하여 2
포스트모던 시대의 삶은 두가지로 귀결된다. 극도의 안정성과 극도의 향유. 이전의 최고의 직업은 '사'자 돌림으로 여겨졌으나, 지금의 최고의 직업은 '공무원'이다. 모순적으로, 모던은 포스트모던이 무지향적인 특성을 비난함에도 포스트모던은 자신의 존재안정성을 위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모던은 자신의 이념이 자신의 생존을 이끌리라 생각하므로 모든 것을 버리고 투신하거나, 모든 것을 투사한다. 즉, 모던은 현실지향적이지 않기에 언제나 준비되어 있지 않고, 포스트모던은 불안한 자기를 의식하기에 많은 것을 준비한다. 단지 상황은 대비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 대비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지향성은, 이념적이지 않으므로 모던적이지 않음에도 어느정도 그러한 특성을 띤다. 대비의 전략이 합리성의 탈을 쓰는 것이다. 이는 다시 타자와의 동질화, 획일화를 유발하며 생존을 위협한다. 그러면 여기에 차이를 만들기 위해, 또다시 보다 많은 시간
2018년 5월 1일


'나'라는 존재에 대하여 1
'나'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부정성 위에 세워져 있으므로 공허하다. 나의 범주는 타자의 부정성을 근간으로 하므로, 타자는 내가 아니지만, 타자 없이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나의 경계가 불명확 혹은 그다지 강조할 필요가 없었던 시점, 물리적 존속이 자아감보다 중요했던 시기에서 나의 비어있음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속한 전체의 생존은 곧 나의 생존이므로, 자타의 구분은 오히려 물리적 존속을 위협한다. 반대로, 현대의 '나'들의 물리적 존속은 내가 속한 우리의 존속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나의 물리적 존속과 생존가능성은, 타자와의 차이에 기반한다. 특징 없이 타자와 동일한 나, '타자와 동일한 능력을 가진 나'는, 필연적으로 타자와 동질성을 이유로 경쟁하게 된다. 따라서 이질성이 생존의 위협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오히려 동질성이 생존을 위협한다. 이는 큰 문제, 딜레마를 가져오는데, 나의 기반이 되는 타
2018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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