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의 의미적 차원의 깊이
- seungyonkimcomp1
- 2018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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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에서 예술작품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어떤 현상, 혹은 물질의 감각적 측면을 분리하여 그 자체를 하나의 독립적 차원으로 만들고, 다른 의미들을 제거한 채 거기에 새로 부여한 단 하나의 의미,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층위만을 남기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으로는, 모더니즘 초기의 미래주의 운동이 있다. 미래주의에서 운동, 움직임이라는 것은, 그것이 이해되는 의미—'발레'라거나 '기차의 운행'이라던가—가 제거되고, '운동'이라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남겨진 후, 여기에 '미래지향적'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그리고 주관적인 의미층위만을 부여한다. 여기서 '운동' 자체는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종교의 새로운 계약, 유토피아적 비전 구현의 약속을 보여주는 하나의 성물이 된다.
이전의 회화에서는, '동작'(혹은 자세. 움직임과는 다름)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공통적인(최소한 문화권 내에서) 기호를 통하여 작동하므로 관습적이기는 하나 주관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기차의 운행'이 과학의 발전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이 작품에서 드러내는 의미, '유토피아적 미래의 상징'이라는 의미는, 그로부터 그러한 인상을 받은 예술가의 것이지, (문화권 내에서)공통의 것이 아니다.
음악에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 것으로는 '불협화의 해방'이 있다.
불협화를 맥락으로부터 떼어냄. 예로 하이든 모차르트에게 있어서 감7화음이라는 불협화는 다른 3화음, 7화음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며, 따라서 맥락에 따라 제한적으로만 사용된다.
베토벤의 작품에서는 감7화음이 보다 빈번하게 나타나나(피아노 소나타 8번이나 32번 등), 그럼에도 그 맥락을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맥락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된 것일 뿐, 맥락을 벗어나지 않으며, 이를 통해 하이든, 모차르트와는 구별되는 베토벤 자신의 고유한 양식적 개성을 갖는다.
낭만, 후기낭만에 이르러서 이 불협화는 다른 맥락, 비틀린 또는 의도되지 않은 방향으로의 해결이라는 방식으로 맥락화되었다.
쇤베르크에 이르러서는 불협화는 전후의 맥락을 통하여 존재를 양해받지 않고, 그 자체가 전후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운용된다. 그러나 불협화가 가지는 맥락적 의미—긴장이나 불안, 이를 통해 구축된 클라이막스로서 작용하는 것이나 기대되지 않은 놀람으로 작용하는 것 등—는 불협화로부터 제거되고, 불협화라는 현상 자체만 남는다. 따라서 작곡가는 이 화음을 위한 맥락을 재구축하여야 한다. 그러나 여기—모더니즘의 작품들에서는 새로운 맥락은 존재하지 않거나 희미하게만 존재하며, 작곡가에 의해 부여된 A나 B, 혹은 알파나 베타 라는 식으로 불리는 어떤 탈의미적 기호의 얇은 의미적 층위, 그 자체로 드러나지 않고 해석되기 전에 드러나지 않는 어떤 불투명성 없이 투명한 현상 자체만이 남는다.
개념예술에서 이는 극에 달한다. 모든 부수적으로 이해되는 감각적 정보들, 이전의 혹은 다른 예술작품들이 맥락을 형성하기 위해 다루어 왔던 '불필요한', '비경제적인' 부분들은 철저히 배제된다. 그것이 '화합'을 써놓으면 화합 자체를 지시하며, 감시하는 눈을 그려놓으면 감시하는 눈의 존재만을 의미하고, 분쟁이 일어난 지역을 지도에 표시하면 그런 사건들의 존재만을 언급한다. 여기에 추가되는 의미의 차원은 오직, 지시된 대상물에 대한 작가의 태도 뿐이다.
이것이 모더니즘의 의미적 얄팍함이다.
여기에는 감상자가 이해할 그 어떤 체험적인 맥락도 없다. 그리고 감상자가 그에 동조할 어떤 이유도 없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이기를 멈추고 철저히 '이성'이라는 종교의 프로파간다로서 작동하며, 바로 그런 이유로 배제된 인간성에 의해 작품은 이해되기 또한 멈춘다. 그러나 그것은 감상자의 이해나 동조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이성적으로 완벽하기에, 맥락도, 타자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8. 5. 6.
KR © 2018 김승연(Seungyon Kim). 출처 표기 인용 가능 /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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