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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하는 부분들, 긴장을 일으키는 구조를 통하여 드러나는 것

  • seungyonkimcomp1
  • 2018년 5월 11일
  • 2분 분량

어떤 사람의 하루의 삶이, 어떤 낡고 쓸쓸한 텅 빈 집 내부의 공간과 교차 편집된다.  그는 일어나 가족과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고, 업무를 보고, 짬나는 대로 외국어를 공부하며, 친구들과 연락하고, 퇴근해서는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며, 집에 돌아와 잠이 든다. 그의 삶은 완벽하고, 그는 생기있고 열정적이어 보인다. 사이사이 나타나는 황량한 집과 황폐화된 정원은 그의 삶과 기이한 대비를 이룬다.


그는 거의 모든 순간에 이상적인 삶을 보여준다. 잠이 들기 전 생기가 사라진 순간의 표정 전까지.* 그 순간에 낡은 집의 퇴락함이 스냅 샷처럼 컷어웨이로 스친다. 마치 이것이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상념이고, 이를 털어내려는 것처럼, 그는 고개를 살짝 흔들며 계속 이를 닦는다. 다시 아침이 되어 출근을 하고, L-cut으로 업무가 계속되는 사이 화면은 암전되고 사운드만 남아 invisible cut이 계속된다. 이제 집의 기억은 아무런 연관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업무 중에 발생하는 사운드의 지속 사이에 낡은 집이 나타날 때의 사운드가 순간적으로 컷어웨이 되었다가 사라지며 업무의 소리가 계속되고, 업무 중의 소리는 페이드아웃되며 사라진다.


여기서 낡은 집의 존재는 맥거핀이다. 그럼에도 이 공간은 인물에 대해, 이 인물이 무엇을 회피하고 있는가에 대해, 인물의 심리에 대해 무언가를 집요하게 말하고 있다. 그가 보여준 공간에 대한 순간적이고 짧은 반응, 공간과의 실낱같은 연계 때문에, 그가 이 공간과 관계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일상으로부터는 유리되고 공간과 인물과의 관계는 감정적으로 끈적거리게 된다. 이는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인상적이고 강렬한 연계에 의해, 감상자에게서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다. 만약 이것이 장편영화라면 절대적 시간에 따라 그 관계가 희미해지고 끊어질 수도 있지만, 여기 단편에서는 그렇지 않다. 길이에 따라 연계가 지속되는 효력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혹은이를닦거나하는장면대신, 사람들이(혹은남자들이) 보통멍때리는대표적인순간인엘리베이터안에서가려는층에도착하는것을기다리는사이의장면을쓸수도있을듯하다.


- 홍상수는(또는 다른 감독들은) 영화에서 두가지 서로 충돌하는 내용을 단순하게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잡는다. 그러나 이렇게 그 자체를 날것으로 드러내는 것은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 무엇이 작용하고 있는가?


- 쇼팽은 발라드 2번에서 서로 접점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두가지 극단적으로 다른 분위기의 부분을 교대시키는 것으로 곡을 운용해 나가고 있다. 이는 위의 시놉시스에서의 연출과 유사하게 보인다. 그러나 두가지는 분명하게 다른 방식이다. 쇼팽의 곡에서는 서로 충돌하는 두가지가 모두 주요한 내용(혹은 둘 다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만이 내용)이며, 서로는 각각이 이미 가지고 있는 내용을 부각시킬 뿐, 새로운 서술을 더하고 있지 않다. 후반부에서는 하나의 내용(격렬한 부분)이 다른 하나의 내용(평온한 부분)을 침식해 들어가고, 드러나지 않았던 것을 드러내어 깊이를 보여주지만, 없던 부분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반대로 위의 시놉시스에서는, 기본적으로 하나(낡은 집)가 다른 하나(인물)의 서술로서만 기능하며,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는 장면이 충분히 인상적이기만 하면 둘 사이의 간격이 멀수록 그 관계는 더욱 확고해진다. 이 관계에서 종속적인 내용이 핵심 내용에 대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영화 자체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는 내용이자 드러난 표현만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측면이어야 하는, '내부의 공허감'이며, 이 종속적 내용이 되는 공간인 낡은 집은 인물의 내면적 황폐함을 드러내는 영화적 상징이다. 인물은 그 어떤 순간에도 공허함 같은 것은 드러내지 않고 있고, 공허감은 영화적 상징으로서의 텅빈 집만이 보여주는 특성이지만, 집은 그 무엇도 아니기에—거기서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결부시킬 어떤 인물도 등장하지 않기에, 그것이 가진 특성은 인물에게로 전이된다. 또한 인물이 보이는 활력과 영화적 상징으로서의 텅빈 집이 드러내는 전이된 공허감은, 인물 안에서 양립할 수 없기에, 그 간극에서 어떤 절박함이나 극렬한 감정적 요소가 형성된다. 이는 영화 내에서 단 한순간도 드러나지 않는, '그 자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표현이다.


쇼팽의 발라드 2번은 이와 달리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들 외의 것을 표현하고 있지 않으므로, (음악 외적으로) 깊이가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며, 결론적으로 그 둘에 나타나고 있는 방법론은 외형과 달리 연관성이 없다.



KR © 2018 김승연(Seungyon Kim). 출처 표기 인용 가능 /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N © 2018 Seungyon Kim. Quote with attribution. No reproduction or redistrib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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